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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3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13 조회수 : 273

한 번의 만남은 작은 점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점과 점이 만나서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서 ‘면’이 되는 것처럼 점차 넓어지는 것이 바로 사람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은 점과 같은 만남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면’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한자어를 잘 살펴보십시오.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씁니다. 즉,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의 절차탁마(切磋琢磨)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웃과 함께 하려는 계속된 노력을 통해서 작은 점이 선이 되고 면이 되면서 풍요로움을 갖게 됩니다. 이웃과 함께 희로애락을 되풀이하면서 세상 안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욕심이 이러한 성장을 막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원숭이를 잡을 때, 손만 집어넣을 수 있는 항아리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어둔다고 하지요. 그러면 좁은 입구 안으로 손을 넣고서 안에 있는 먹이를 움켜잡으면 끝입니다. 손을 펴지 않고 꾹 움켜잡고 있기 때문에 항아리 밖으로 손을 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내 안의 욕심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때로는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을 포기하는 희생을 가져야 미래가 보장됩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었는지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주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심과 욕심을 드러내면서 마치 자신의 뜻이 하느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라는 것은 개인적인 열심은 물론이고 공동체 안에서도 열심히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형제와 화해한 뒤에 예물을 봉헌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안의 욕심과 이기심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점’과 같은 만남을 넓은 ‘면’이 될 수 있도록 사랑으로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 있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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