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
신앙생활에서 ‘봉사가 우선인가 아니면 기도가 우선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흔히 마르타와 마리아에 관한 복음 말씀에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르타의 행동에서 실천적 삶을, 마리아의 행동에서 관상의 삶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둘 중에 비중이 있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두 행위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두 여인은 똑같이 예수님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진리를 깨닫고 있었고, 마르타는 예수님을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화가 난 마르타는 예수님께 자기의 편이 되어 마리아를 혼내달라고 투정부립니다. 마르타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집을 방문한 중요한 이유는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이지, 환대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깨달은 마리아는 제 몫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예수님 시중들기에 바빴습니다. 신앙인들이 자칫 간과할 수 있는 것이 마리아처럼 진리의 말씀을 듣는 행동입니다. 봉사자들 가운데는 마르타처럼 봉사활동에만 치중하여 정작 중요한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신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듣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행위는 신앙의 핵심이기에, 먼저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듣는 것은 자연스럽게 기도로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중요한 일들을 앞두시고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자주 혼자 외딴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신앙인은 깊은 침묵 속에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모든 행위에 앞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아닌, 진정으로 주님이 원하는 실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삶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듣는 자세는 겸손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듣는 태도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며, 상대방이 말하는 진위를 구별하는 한편, 우리의 말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진리를 상대방에게 말하고 그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모습을 보며, 오늘도 많은 선택 속에서 진정 우리가 선택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선택을 할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글 이승환 루카 신부(수원교구 능평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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