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평화방송에서의 방송 녹화를 마치고서 오랜만에 동창신부를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저희 둘은 몸보신을 위해 닭백숙을 잘 하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집이고, 어제가 마침 중복(中伏)이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아무튼 약간의 기다림 끝에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그렇게 친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뚝뚝했고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습니다. 전혀 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장님은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 좋아하겠지만, 직원들은 싫어하는 구나. 이런 모습을 손님들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제가 더 적극적으로 웃으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음식을 저희 식탁에 놓다가 직원의 손이 제 손에 닿게 되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니까 직원은 “왜 이렇게 깜짝 놀래요?”라면서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때 저는 “손이 닿으니 제 가슴이 설레서 놀랐나 봅니다.”라고 대답하자 웃지 않던 직원이 크게 웃습니다. 그 뒤로도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친절하게 서빙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등등의 말을 계속했지요.
식사 계산을 하고 이 식당을 나서는데 뒤에서 “또 오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 말을 들은 동창신부가 이야기하더군요.
“이 식당에서는 또 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자신이 행한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내가 행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받을 것만을 떠올립니다. 받는 것에만 집중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미쳤다.”라는 소문이 정말로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반가운 얼굴들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하면서 외면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어떻게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친척들에게 그렇게 야박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 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즉, 세속적인 인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보다 세상의 법칙에 선택의 기준을 둡니다. 그래서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