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감은 행복과 정서적 안녕에 필요하다고 합니다. 미국 과학 진흥회에서 발간하는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의하면, 사회 관계망은 면역력을 증가시켜 질병 저항력을 높이고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풍부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불안과 우울을 덜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든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관계를 맺지 않음으로써 파생되는 자기 자신의 피해는 어떨지 떠올려 보십시오. 예전의 아픈 상처로 더는 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하지만 사실 좋은 관계가 더 많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자식 때문에 집 안이 편안한 날이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포기했다면서 마음은 아프지만 어떻게 살든 이제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동안의 아픔이 얼마나 컸었기에 이러한 다짐까지 하시게 되었을까 싶지만, 말처럼 포기가 쉽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또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충고했지만, 듣지 않는다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사랑에서 우러난 대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을 포기하면 결국 힘들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관계를 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끊음으로 인해서 나의 행복이 보장될 것 같지만, 관계가 깨짐으로 인해 생기는 고통이 더 커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냥 포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나와 그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지금 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십니다. 곧 첫 번째는 혼자서, 두 번째는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다음에는 교회에 알려서 타이르라고 이르십니다. 이러한 행동을 왜 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주님 안에서 모두가 노력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화합을 실로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혼자 하는 기도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서 바치는 기도를 원하시기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무엇이든 청하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 하는 것을 더 즐기면서, 내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혹시 함께 기도하더라도 나 자신만의 기도만을 드리고 있으며, 관계의 회복보다는 내게 어떤 이득이 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진정한 관계의 회복은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기둥처럼 세워져 있을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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