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8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15 조회수 : 365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합니다. 

“위대한 것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크게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인간관계, 명예 등 무엇인가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서두르다가 아픔을 겪고, 또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다림의 시간은 필수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다림의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에 많은 앎을 통해서 자신을 정화하고 성숙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위대한 것이 내 안에서 나올 수가 있게 됩니다. 

어떤 책을 읽다가 ‘시치미’라는 단어의 유래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유래는 고려 시대 귀족들이 매에 붙인 자기 것이라는 표식이라고 하더군요. 사냥을 위해서 훈련된 매는 필수였는데, 워낙 훈련하기가 힘들었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따라서 종종 잘 훈련된 매를 훔쳐서 원래 주인의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시치미’의 뜻이 ‘자기가 하고도 아니 한 체,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태도’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자주 사용하고 있었지만, 유래와 의미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의미를 알게 되면서 ‘시치미’라는 단어가 새롭게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의미를 찾아가면서 살아간다면 분명 모든 삶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의미를 찾지 않고 그냥 사는 것이라면 매일 똑같은 하루의 반복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셨다는 신앙 교의에 따라 성모님의 승천을 기리는 축일입니다. 이러한 영광은 하루아침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예수님 잉태소식을 듣게 되지요. 아직 남자를 모르는 상태인데 그것도 당시에는 처녀가 아기를 갖게 되면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어떻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잉태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들 과연 믿을까요? 신심 깊은 요셉 성인조차도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어 파혼을 결심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결정적인 아픔은 사랑하는 아들의 십자가 죽음까지도 직접 목격하고 시신을 당신의 품에 안아야 하는 고통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기다리셨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려고 노력했고,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자신을 성숙하고 깨끗한 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결과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듯 하늘나라로 직접 불림을 받아 오르는 영광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어떠했나요? 성모님의 모범을 기억하면서 올바른 기다림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