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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24 조회수 : 349

지나친 욕심은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널리 퍼져 있는 불만족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욕심은 불만족을 우리의 마음속에 심어 놓습니다. 어떤 형제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주식 투자를 해서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자식들에게도 빌딩 하나씩이라도 마련해주려면 더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 같았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아주 최악이었지요. 주가의 폭락으로 오히려 큰 빚까지 떠안게 된 것입니다. 

이 상황을 형제님께서는 만족해할까요? 아니지요. 최고로 불만족한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폭락한 주식의 회사가 미웠고, 주식시장을 움직인다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미웠고, 이런 상황을 국가가 만든 것 같아 미웠습니다. 계속해서 불만족한 대상이 그의 곁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누구는 “많이 벌었을 때 멈췄어야지 누구를 탓해?”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욕심의 끝이 과연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되는 것이 욕심일 것입니다. 자기라는 틀에 매여 있으면 절대로 욕심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은 자기를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지금 이 순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오늘은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나타나엘은 자기 형 필립보와 마찬가지로 예언서에 정통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언서 어디에도 나자렛이라는 지명도 나오지 않으며, 따라서 그곳에서 특별한 인물이 나온다는 구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식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필립보의 “와서 보시오”라는 말을 따랐다는 사실에서 그의 열려있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형님의 제안이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비록 예언서에 나오지 않는 나자렛 출신이지만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예수님께로 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 믿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나타나엘을 예수님께서는 칭찬하십니다. 

사실 당시 이러한 선입견에 쌓여 있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바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 밖의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게 됩니다. 

이 세상의 기준 안에 갇혀 사는, 그래서 끊임없는 불만족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진정한 만족의 길, 바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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