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잡지를 보다가 ‘손금 보는 법’이라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이 잡지의 설명을 토대로 서로의 생명선을 비교했습니다. 우리 중에서 제가 제일 짧더군요. 남들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짧은 저의 생명선 손금을 보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 일찍 죽나 보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이 말을 듣고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괜히 마음이 울컥해져서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구석진 곳에서 혼자 훌쩍거리며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선이 제일 짧은 저는 지금 다른 친구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 친구들이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우리 중에 제일 오래 살 거야.”
길게 그리고 짧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최종 목표는 이 세상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이니까요. 따라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바로 두 가지의 ‘용기’가 아닐까 싶네요.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입니다. 이 용기를 갖기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끊임없이 연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용기는 이렇게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직접 행동으로 취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브드 소로는 ‘삶이 아닌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라는 말을 했지요.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과감하게 뒤엎을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좋은 삶’, ‘행복한 삶’을 만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를 향해서 불행선언을 하십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열심히 하고 보이지 않는 마음에는 탐욕과 방종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였던 이유는 이 세상의 삶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끝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힘주어 강조하십니다.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잔 속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용기,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직접 실천하는 용기를 통해 우리 삶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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