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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9-14 조회수 : 363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부정적인 결과만 지레짐작하며 속만 끓이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이런 이들과 함께 있으면 힘이 빠지지요. 희망의 말은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만, 부정적인 말은 의욕을 꺾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위인은 ‘부딪혀보고, 시도하라.’라고 말합니다. 시도하지 않은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의욕을 키우는 사람인지, 아니면 의욕을 꺾어버리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원칙은 ‘내가 받아들인 것만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즉, 나 자신이 거부한 것은 내게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용서를 거부한 것이지요. ‘돈 없이는 못살아!’라고 말한다면, 돈 없는 삶을 거부한 것입니다. ‘저 사람이 싫어!’는 무엇일까요? 나의 이웃을 거부하는 말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거부하는 마음은 그대로 내게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는 전혀 이루어질 수 없고, 그 부정적인 마음만 자기 안에 남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 변화의 시작이 바로 받아들임에 있다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거부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구원의 길은 절대로 열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십자가는 주님의 다 할 수 없는 사랑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들어 올린 구리뱀을 쳐다본 사람이 죽지 않았던 것처럼, 십자가로 들러 올려진 주님을 믿는 사람만이 몸과 마음으로 죄를 지어 자초한 모든 죽음에서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두고 기뻐하면서, 축제의 예복을 입고 자기 신랑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오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경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놓으셨으며,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지니고 있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귀중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인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포기했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였을까요? 그래서 어떤 변화를 주님을 위해서 하고 있을까요? 

우리도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십자가가 아무리 무겁고 힘들다 하더라도 거부하면 어떤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받아들이신 주님처럼, 우리도 이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한층 더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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