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를 잘 아실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로 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구약에서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가 수치심을 느끼고 입은 옷이 무화과 잎이었지요. 단백질 분해효소가 있어서 육식 후에 소화제로 먹으면 좋고, 변비에도 아주 좋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무화과’라는 이름을 쓸까요?
무화과는 한자로 없을 무(無), 꽃 화(花), 실과 과(果)를 씁니다. 즉, 꽃 없이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 없이 열매를 만드는 나무는 없지요. 이 무화과나무 역시 꽃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작은 꽃들을 꽃 주머니 안에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 꽃들이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꽃 없이 열매를 맺는 이상한 나무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요.
다른 나무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내 이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다른 점을 가지고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보면서 쉽게 판단하고 때로는 나와 맞지 않는다면서 단죄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안에 보이지 않는 꽃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어떨까요? 내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어서는 또 다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나옵니다. 불의한 집사의 비유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집사 일에서 쫓겨나기 직전, 그는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호의를 베풉니다. 쫓겨난 뒤의 일을 대비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의 입장으로 우리는 이 집사를 바라봅니다.
‘아니 어쩌면 주인의 돈을 가지고서 호의를 베풀 수가 있는가? 주인에게 커다란 손해를 끼치는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간교하고 부정한 사람이다.’
하지만 주인은 이 불의한 집사를 칭찬합니다. 영리하게 대처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남을 돕는 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이 맡긴 재물을 가지고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칭찬받은 이유였지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나만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님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만을 내세워서 판단하고 단죄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행한 이웃 사랑만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잊지 맙시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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