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주님을 의식하며!
명장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며, 군사들을 독려하였고, 그 결과, 12척의 배로 200척이 넘는 왜군들의 배를 침몰시키는 승리를 획득하였다. 제3자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이러한 명언과 지도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나 자신’에게 ‘죽음을 각오하자’라며 희생적인 삶이 요구된다면 과연 그 길을 용감하게 갈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약한 우리를 굳은 결심과 확고한 믿음으로 고취시켜주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현실을 숙고해보면,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이 두렵고 거북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버리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은 너무 가혹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면, 차라리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후회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아세례자들 중에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순교자들은 수많은 역경과 박해를 인내하며 자신의 신앙을 증언하며, 결국에는 자신의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 하였다. 그들은 낮에는 고문과 회유를 받는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밤에는 성가를 부르고, 기도하며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교가 요청된다면 주님을 따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박해가 없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기에 아쉽게도(?) 순교의 월계관을 받을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순교의 삶’이 아닌 ‘순교적 삶’을 살도록 요청받고 있다. ‘순교적 삶’은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기도하고, 미사참례를 할 때만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주님의 현존 의식’ 속에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도, 식사 중에도, 업무 중에도, 휴식 중에도, 고민 중에도, 대화를 하는 중에도,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역경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주님이 곁에 계시며 말을 건네주시고, 용기를 주시며, 바른 길로 인도해주심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이다. ‘이제 곧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렵고 걱정스러움이 엄습하겠지만, ‘지금의 삶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편한 마음으로 세상을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 노희철 베드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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