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엘렌 랭거(Ellen Langer)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난처한 상황을 제시했습니다.
1) 수업 들어가기 직전 45명 학생 전체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상황.
2) 아주 매력적이지만 대단히 차가워 보이는 이성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상황.
3) 아주 싫어하는 두 사람이 속해 있는 위원회에 제3의 구성원으로 참여한 상황.
이 세 가지 난처한 상황에 대해 두 그룹으로 나눠서, 첫째 그룹에는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할지 방법을 생각해 볼 것(과정 지향적)’을 주문했고, 두 번째 그룹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성공 가능성을 0~100점까지 매겨볼 것’(성공 지향적)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두 그룹의 주문을 서로 바꿔서 풀도록 했습니다.
어느 쪽이 자신의 성공 가능성을 더 크게 생각했을까요? 첫째 그룹이었습니다. 과정을 먼저 생각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높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의 가능성만을 따졌던 둘째 그룹은 대부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즉, 성공 지향적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공 가능성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일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집중해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힘도 생깁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를 떠올려 봅니다. 그는 자신의 헛된 맹세로 인해서 세례자 요한을 죽이게 되지요(마태 14,1-12 참조).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맹세를 지키는 것에만 생각했기에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왕이라는 위치였기 때문에 분명히 또 다른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맹세를 지키느냐 마느냐만 따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라는 속담처럼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쁘고 즐겁게 생활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런 세상을 거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정의 행복보다는 결과의 행복을 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로데와 마찬가지로 후회와 함께 이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후회할 짓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대신 주님과 우리 모두 함께 누리는 그 행복을 좇아서 생활하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