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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9일 _ 노희철 베드로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9-29 조회수 : 425

만 달러 시대를 준비하며


   오늘 복음에는 ‘부자와 라자로’라고 하는 가난한 이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사람 모두 죽었지만,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곁’(영원한 행복의 장소)으로 가는 반면, 부자는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는 곳’(루카 16,25)으로 갑니다. 그런데 라자로가 아브라함의 곁으로 간 이유와 부자가 ‘고초를 겪는 곳’으로 가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자주색(왕궁에서 입는 옷의 색깔) 옷과 아마포(베로 짠 속옷으로 비싼 가격)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부유한 인물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부자로 추정되지만, 그의 삶이 악하거나 악행을 저질렀다는 근거는 전혀 없으며, 또한 라자로가 선행을 하였다는 그 어떤 내용도 없습니다. 만일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고초를 겪는 곳’으로 가야 한다면, 성실하게 살면서 재산을 축적한 이들은 모두 억울하고, 하느님이 정의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부유한 이들이 ‘고초를 겪는 곳’으로 가는 것은 부의 축적 문제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가 그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라자로는 ‘부자의 집 대문 앞에,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누워있었고’, 게다가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을 정도’로 나약하고 병든 존재였으며,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허기지고 불쌍한 존재(루카 16,20-21)였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자신의 집 대문 앞에 있는 불쌍한 라자로의 모습을 외면하였습니다. 부자는 라자로가 눈앞에 존재했지만, 그의 존재를 무시하며, 자신의 삶에만 충실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풍요로움 그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곤경에 처한 이에 대한 배려와 관심의 부족이 그 부자를 고초의 나라로 가게 하였을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며, 선진국 진입의 문턱으로 들어섰다는 기사를 접하였습니다. ‘꿈에 그리던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달성’은 국민들을 기쁨과 행복감으로 채워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풍요로움으로 인한 기쁨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거와 비교해볼 때,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음에도 그런 불편함이 올라오는 이유는 빈부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분배의 정의가 올바르게 실현되지 않았다는 불평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1티모 6,7 참조)을 인식하며 모든 재물과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하더라도, 재물을 축적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글 노희철 베드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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