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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6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06 조회수 : 357

10월 6일 [연중 제27주일] 
 
오늘의 주제는 '믿음'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말하는 믿음은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그리고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에 온전히 의탁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두려움이나 자만심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것이어야 한다. 
 
제1독서: 하바꾹 1,2-3; 2,2-4: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하바꾹 예언자는 예레미아와 동시대인이다. 하바꾹은 하느님께서 인간들 사이에 정의를 다시 세워주지 않는다고 하느님을 비난하듯 항의하고 있다(1,2-3). 이 불편에 대해 주님께서는 신뢰심을 가지라는 계시를 내리신다. 비록 쉬 오지 않으실지 몰라도 당신을 믿는 사람을 도와주시러 반드시 오신다. "네가 받은 말을 누구나 알아보도록 판에 새겨두어라. 네가 본 일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끝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쉬 오지 않더라도 기다려라. 기어이 오고야 만다.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2,2-4). 주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계속 신뢰하는 사람들의 구원을 보증하시고 계시다. 그러나 '올바른 정신을 갖지 못한' 사람, 즉 순간적인 어려움에 무릎 꿇어 하느님께 신뢰할 용기를 잃고 불의와 부정에 자신을 내맡겨 버리는 사람은 멸망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그렇다면 '신앙'이 어떻게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육체적'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에 충실한 사람들은 갈데아 민족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며, 영신적 생명은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신뢰함으로써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악이나 폭력의 모든 위협과 안이한 것, 편의주의적인 것, 감각적인 것 등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강인함을,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형성시켜준다. 믿음은 우리의 직접적인 체험을 넘어 기다릴 줄 알게 한다. 문제는 말씀을 신뢰하는데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영신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패배할 것이다. 
 
복음: 루가 17,5-10: 너희에게 믿음이 있다면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루가 16,13)라고 하시며, 약은 청지기와 부자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연결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재물을 끊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에 사도들은 의기소침해진 것 같다. 그래서 주님께 청한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5절).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믿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들의 믿음을 더해 달라고 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겨자씨만한 믿음도 갖고 있지 않다고 답변하신다. 그만한 신앙이라도 있었다면 그 믿음은 그 고장에서는 뿌리가 대단히 깊어서 폭풍우에도 절대로 뽑히지 않는 뽕나무를 뿌리째 뽑아 바다에 그대로 옮겨 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믿음이란 양적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믿음의 가치는 '질'과 '순수성'에 달려있다. 겨자씨는 그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내부에 있으면서 그 씨앗 자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성장시켜주는 강력한 생명력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즉 믿음이란 하나의 내적 실체로서 어떠한 형태도 갖고 있지 않으며, 거창한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일상성' 안에 살아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실현시켜 나가고자 노력함으로써 단순과 겸손을 통해 행하는 모든 것을 '비범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그 자체 안에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믿음은 신앙인의 삶 속에서 아무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중요한 상황에서 뿐 아니라, 매일 매일 매순간 순간마다 '기적'을 이루어주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종의 비유에서 믿음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말씀하신다. 당시의 종이라고 하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시킬 수 있는 주인의 소모품 같은 존재였다. 이 종의 모습과 같이,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것이 '무상'이고 사랑의 선물이기 때문에 공로에 대한 기록부도, 봉사의 시간표도 없고, 봉사의 한계도 획득할 수 있는 권리도 없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다 무상적인 나라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에는 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10절). 우리의 봉사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우리의 봉사가 '보잘것없음'이 드러난다. 정말 우리는 '해야 할 일을 다 했는가?'(10절).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의 '무상성'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자기 자신을 '무상'으로 내놓을 수 있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참된 믿음이며, 제자들이 갖추지 못했던 믿음이다. 이 종의 비유는 하느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든 권리주장을 포기하도록 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이 '활동적'이어야 함을 입증해주고 있다.  
 
즉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한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의 것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도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청하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주님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게 하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성장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며,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무상으로 내어 드릴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하자. 믿음은 여기서부터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은총을 주님께 청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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