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학창시절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식사했습니다. 웃고 즐기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 친구가 일어나서 이런 말을 합니다.
“스페인에는 이런 말이 있어. 죽기 전에 해야 할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아이 한 명을 낳고, 책 한 권을 쓰고,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이래. 이것을 해낸 인생은 잘 산 거래. 이번에 우리 친구 신부가 책을 냈어. 우리 중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한 친구에게 축하해주자.”
이 말을 듣고 저는 곧바로 말했지요.
“나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 그러면 죽어도 잘 살 수 없는 건가?”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스페인에서 하는 말은 꼭 이 세 가지를 해야 잘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일을 무서워하지 않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는 신앙인에게는 창조의 하느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이 창조적인 일은 하느님을 따라 사랑이 가득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뜻보다는 세속적인 모습을 쫓기에 급급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연연하면서 뒤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잘 살고 싶다고 우리는 늘 말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과거 속에 갇혀 있는 삶이 아니라, 지금 실천할 사랑에 집중하면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에 깜짝 놀라지요. 의인이요 예언자라는 평판을 듣는 분께서 전통적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서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식사 전에 손을 씻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모세의 명령으로 몸의 불결함을 닦으라는 말만 있었지요. 그들은 모세의 명령이 마치 하느님의 명령인 것인 양 생각하면서 확대해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더러움을 단순히 겉만 씻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깨끗이 씻어내는 방법을 일러 주셨습니다.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도와주는 것도 자선이고,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도 자선이며,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자선입니다. 이 자선이 바로 하느님을 따라서 행하는 창조적인 모습이 되는 것이며, 이 세상을 가장 잘 사는 길입니다. 이 자선을 통해 우리는 더욱더 깨끗해질 것이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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