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카메라 렌즈를 여러 개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과 똑같이 본다는 표준렌즈부터 단렌즈, 망원렌즈, 광각렌즈, 접사렌즈까지... 비록 고가의 렌즈는 아니지만 필요하기에 종류별로 가지고 있게 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는데 굳이 이렇게 많은 렌즈가 필요해요?”
사진 실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표준렌즈를 끼우고 다니지만, 좁은 거리에서 넓은 장면을 찍어야 할 때도 있고 멀리에 있는 사람을 선명하게 찍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 꽃이나 나뭇잎 등 세밀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찍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즉, 상황에 맞춰서 적합한 렌즈를 사용해야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성지순례 중에 아주 웅장한 성당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웅장하고 멋진 성당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 카메라를 꺼냈는데, 성당이 너무 크다 보니 전체 사진을 찍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거리를 맞추기 위해서 자신이 한참 뒤로 가면 됩니다. 아니면 광각렌즈를 바꿔서 찍으면 되지요. 그런데 성당이 너무 크다고만 불평한다면 어떨까요? 사진 좀 찍게 성당 크기를 줄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간직하고 있었던 우리는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변화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상대방만 바꾸라고 청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밈으로써 자기네 조상들이 한 짓을 단죄한 유대인들의 헛된 미신을 비판하십니다.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어 세운 것이 어째서 악한 범죄행위가 될까요? 오히려 예언자들을 명예롭게 해 드린 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세움으로써 그들을 죽인 자기 조상들이 잘못되었음을 단죄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행동을 본받아서 똑같은 모습으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실제로 죽였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자신들이 불의를 저지른 선조들의 상속자임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무덤을 만들어 세운 것보다 조상의 행실을 본받는 것이 그들의 죄인 것입니다.
율법을 보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21,12)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죄한 예수님을 죽인 사람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당연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을 죽은 자들에게 참회할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실천하지 않으니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회개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행선언의 주인공이 아닌 행복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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