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0월 1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18 조회수 : 407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왜 이렇게 연락이 되지 않냐는 말로 시작한 전화였는데, 이 친구가 하는 말에 도대체 용건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평범한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점심을 어디서 먹었는데 정말로 맛있다는 이야기’를 왜 갑자기 전화해서 말하는지 의아했습니다. 이 친구의 모습은 이렇게 수다쟁이가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예전 공중전화 부스에 적혀 있던 ‘용건만 간단히’라는 문구를 충실히 따르는 친구였습니다. 

느낌이 이상해서 “너 무슨 일이 있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친구는 갑자기 울먹이면서 “명연아! 나 지금 너무 힘들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왜 힘든지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가 생각나서 전화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에 평상시와 달리 하찮은 이야기를 계속했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외로워서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든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지요. 

예전의 일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어떤 분에게 코칭을 하는데, 본 내용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의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힘들었던 대화였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의 모습이 떠올려지면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분은 지금의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의 관심사가 아니면 잘 듣지 않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안에는 외로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는 외로운 사람에게 다가서는 사랑이 더욱더 필요한 요즘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늘 다가서는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에만 머물지 않고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취해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얼마나 사랑으로 이웃에게 다가서고 있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해서 고을과 고장으로 보내십니다. 주님께서 어느 고장에 오셨다는 소식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모릅니다. 빵의 기적을 보면 장정만 해도 사천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제가 인터넷에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모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그들을 찾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을 보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외로워 힘들어하는 이를 위해 보내셨던 것입니다.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사랑을 위해 파견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뜻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찾아올 힘이 없는 이들을 위해 다가서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너무나 적어서 주님께서 “일꾼이 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