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0월 20일 _ 노희철 베드로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20 조회수 : 386

자신이 없어서 어쩌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일 것입니다. 생명이 소멸된다면, 아무리 많은 재산과 명예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무가치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현실의 생명은 물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된 기쁜 소식을 모든 이에게 전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최후의 유언(?)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루카 28,19절 이하)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제자들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희망과 구원의 소식이 되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황당하고 거북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은 체험할 수도 없는 사건이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지만, 부활하셨기에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예수밖에 없다.’(사도 4,12 참조)라는 선포의 내용이 쉽게 수용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제자들은 박해, 핍박, 거부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런 곤란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는 말씀이 새로운 활력과 힘을 솟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셨지만(마르 16,19 참조), 이제는 성령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함께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복음 선포는 제자들만의 능력이 아닌, 함께하시는 주님의 힘과 은총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신앙인으로서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함, 돈독하지 못한 신앙심, 언변과 능력의 부족 등을 이유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주저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자들 역시 우리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복음 선포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시는 주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알아들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라는 말처럼 우리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나약함이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앞의 15절)라는 고백처럼, 복음 선포 사명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스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는 복음 말씀에 힘입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노희철 베드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