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단어가 합쳐져서 더 깊은 의미가 있는 단어들이 참 많습니다. 가을과 하늘, 이 둘을 따로 분리하면 별 느낌이 없지만, 붙여서 ‘가을하늘’이라고 하면 괜히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나무와 잎, 이 역시 분리해 놓으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지만 ‘나뭇잎’ 하면 낙엽 지는 어느 가을을 떠올리며 옛 추억 속에 빠지게도 됩니다. 이렇게 따로 떼어 놓으면 별 의미가 없지만 합치면 큰 의미가 있는 단어들이 이밖에도 참으로 참 많습니다. ‘옛사랑’, ‘기찻길’, ‘눈꽃’…….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있음에 훨씬 더 깊은 의미로 쓰이게 됩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인간 역시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함께할 때 자기 입장만 내세운다면 결코 함께할 수 없게 되겠지요. 여기에 상대를 부정적인 마음으로 판단하고 단죄하면 짐으로만 여겨질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모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 즉 탐욕에서 시작됩니다. 더불어 둘이 하나를 이루어 낼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앞선 단어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서 의미 있고 예쁜 단어가 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때 스스로 생각지도 못한 힘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는 짐이 아닌 힘이 되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라고 대답하십니다. 인간의 구원이라는 거룩한 목적이 있어서 내려오신 주님께서는 재산 다툼을 해결해주는 재판관이나 중재인이 되는 속된 일을 거절하십니다. 이는 우리 역시 탐욕의 죄를 멀리하고 대신 거룩한 일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가리키시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형제는 계속해서 상대방에 대한 나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같은 핏줄이지만 하나가 되지 못하고 따로 떨어져 살 수밖에 없겠지요. 이렇게 탐욕은 사람들을 갈라지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 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주님께 어떻게 말했어야 할까요?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가 아닌 ‘제 형더러 제 유산을 나누어 가지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탐욕을 멀리하고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놀라운 주님의 일을 이 세상에 펼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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