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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27 조회수 : 331

10월 27일 [연중 제30주일] 
 
오늘 독서와 복음은 지난 주일에 이어 기도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오늘은 특히 겸손한자, 가난한 자의 기도에 특별한 강조를 두고 있다. 
 
제1독서: 집회 35,12-13.16-18: 겸손한 사람의 기도 
 
제1독서에서 저자는 하느님께서 큰 희생제물을 즐겨 받으시는 듯이 하는 전례태도에 말려들지 말라고 한다.오히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자, 과부, 억압받는 자들의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신다. 그들의 기도는 진실하고 소박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뇌물에 매수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 기도의 힘은 ‘구름’까지도 뚫으며, 그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의 기도는 하느님께 대해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 루카 18,9-14: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이러한 내용은 오늘의 복음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여기서도 가난한 자 세리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만, 자기의 공로와 선행을 내세우는 자 바리사이의 기도는 거절하신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기도에 있어서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비유의 전체적 의미는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취하는 ‘자만심’과 ‘자기 합리화’의 태도를 고발하는 것이다. 바로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9절)말씀하셨다고 루가는 밝히고 있다. 
 
자기네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명백하게 언급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인 것은 확실하다. 비유의 내용이 ‘올바름’의 형태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한 바리사이파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비유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세우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자만심을 비난하고 계시다.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14절). 
 
비유에 나오는 바리사이파 사람은 자기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청해야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다만 자신이 행한 많은 선행을 자랑할 것 밖에 없다. 그는 율법을 지킬 뿐만 아니라, 율법 이상의 것을 행하고 있다. 즉 율법은 1년에 단 한번 속죄의 날(레위 16,29)에 단식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두 번이나(월. 목) 단식을 한다든가, 생산자에게만 의무가 부과되는 밀, 술, 기름을 구입하면서도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친다든가 하는 것이다(12절). 이것뿐이 아니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자신만이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의 보증을 받을 수 있는 ‘올바른’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11절). 
 
모든 내용이 그 자신만을 들어 높이기 위한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은 단지 그 자신의 자기만족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요소가 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비록 죄스런 상태에 있더라도 그들을 위한 도움과 자선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의’(義)를 돋보이게 하려 그들의 잘못을 고발하는데 더 신경을 쓴다. 그에게 하느님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형제들을 내리 깎기 위한 하나의 구실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했다”(13절). 자기 잘못에 대한 세리의 겸손하고도 순박한 고백은 그가 대죄인 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느님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그분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느님 앞에 내세울만한 것이 없기에 오직 하느님의 자비만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그가 무엇을 얻는다면 하느님께서 그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그를 새롭게 해주는 사랑일 것이다. 즉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은총’이요 ‘선물’이다.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14절). 세리의 태도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최고의 사랑과 용서의 모습을 되찾으신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올바름’이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분만이 자신을 구원해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기도’란 세리의 기도처럼 항상 겸손한 기도를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기도를 들어주신다. 바로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은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현대인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기도를 하더라도 바리사이처럼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한다. 
 
복음의 바리사이파 삶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면서 ‘하느님 앞에 증오심으로 가득 차있는’ ‘거짓’과 ‘위선’으로 싸여있는 인간의 상징이며, 하느님 앞에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의’만으로 족하다는 자만심으로 차있는 사람들의 상징이다.이러한 바리사이파 사람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퍼져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자기 형제들과 교회의 바리사이즘을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하느님과 복음은 어느 누구의 자기 찬양을 위한 도구가 될 수는 없다. 
 
제2독서: 2디모 4,6-8.16-18: 정의의 월계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았음을 알고, 동시에 그 구원에 협력해야할 의무를 깨닫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태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7-8절). 
 
하느님 앞에 겸손된 기도를 바치면서 바로 주님께서 나 자신에게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그분의 자비를 청하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하느님 앞에 언제나 올바른 사람으로 서있는 우리가 되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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