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교 안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당연히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더 많은 학생이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아마 쓰러져 있는 사람의 상황을 통해서 학생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상황을 물어보지요. 아파서 쓰러진 것 같은지, 술에 취해서 널브러져 있는 것인지, 혹시 마약 중독자는 아닌지……. 또 깔끔한 옷을 입었는지 아니면 노숙자처럼 보이는지 등을 통해 지나가는 학생들의 태도가 결정될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어느 대학교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 급히 가서 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학점을 얻을 수 없다고 공포했습니다. 학생들은 급하게 과제를 들고서 교수님께 가고 있는데 건물 앞에 깔끔한 옷을 입고 있는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입니다. 이때 학생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결과는 약 10%만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 학생들에게 급한 일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쓰러져 있는 사람의 상황에 상관없이 63%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황이냐도 물론 영향을 미치겠지요. 그러나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본인의 마음이었습니다. 본인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사랑을 베풀기도 하고 또 반대로 외면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종 조건이 채워질 때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고, 또 그 사람이 사랑을 받기에 합당할 때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내 마음에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크든 작든 상관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아주 작은 사랑이라도 나눠주려고 노력할 때 그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나 누룩과 같다는 것이었지요. 겨자씨는 엄청나게 작은 씨입니다. 그러나 이 겨자씨가 정원에 심어져서 큰 나무가 됩니다. 또 누룩도 그 자체는 별 볼 일 없지만, 밀가루 반죽을 크게 부풀게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작은 것이 바로 우리 마음에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사랑의 모습이지만 주님 안에서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결정적 이유가 됩니다.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갖추는데 집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작은 것도 크게 만드시는 주님의 은총은 우리의 사랑 실천안에서 더욱더 분명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