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책을 볼 때 중요하거나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긋곤 했습니다. 그것도 한 가지 색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로 밑줄을 그었습니다. 이렇게 밑줄을 그어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책 읽는 기분도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방법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때는 밑줄 그은 부분만을 보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제 나름대로 밑줄을 긋다 보니 남들에게 이 책을 선물로 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책 옆에 노트를 함께 준비합니다. 이 노트에 밑줄을 그어야 할 중요하고 좋은 구절을 직접 적고, 또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저만의 생각을 적어나갑니다.
이렇게 적다 보니 노트의 양이 점점 불어났고, 이와 함께 하루에 제가 쓰는 글의 양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저’로서는 최적의 방법을 찾은 것이지요.
만약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방식인 ‘밑줄긋기’에 계속 매여 있다면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익숙한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방식에 철저하게 구속되어 있다면 나 자신의 발전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익숙한 방식만 고수하다 보면 다른 방식을 찾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높이 뛰기를 아실 것입니다. 지금이야 거의 모든 선수가 몸을 뒤로 눕혀서 뛰는 ‘배면뛰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만 해도 배를 땅 쪽으로 향하게 하고 넘는 ‘벨리 롤 오버’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 방법 외에는 높이 뛰기의 기술이 없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1963년 미국의 딕 포스포리가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높이뛰기를 포기하려다가 ‘거꾸로 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처음으로 배면뛰기를 시도했고, 이를 통해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게 되었지요. 익숙한 방법이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나 그리고 더 나아질 수 있는 나를 위해 변화시킬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 자캐오의 집에 묵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면서 투덜거리지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익숙한 모습입니다. 동족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 세리는 매국노인 동시에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화폐를 만지기 때문에 우상숭배에 빠진 죄인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세운 사랑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주님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사랑의 확장은 무한대로 펼쳐집니다. 특히 주님의 사랑은 어떨까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엄청난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제약을 둬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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