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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05 조회수 : 361

한 형제님께서 실직의 아픔을 이야기하십니다. 가정 상황이 좋지 않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실직까지 해서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서 자신을 ‘실패자’라고 단정을 짓고 있더군요. 이런 신세 한탄만으로 무엇이 바뀔까요? 그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변화는 위험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어려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최근의 일인 실직을 왜 했는지를 떠올려 봤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회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필요한 사람으로 일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직했다는 것 자체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스스로 ‘실패자’라고 단정 지으면서 이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티븐 잡스도 자기가 창업한 회사에서 해고되었고,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이라는 딱 한 번의 성공이 있기까지 자그마치 27번을 실패라고 할 수 있는 낙선을 맛보았습니다. 하물며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어떨까요?

스스로 ‘실패자’라고 규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통해서는 다시금 일어날 힘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극복한 사람은 다음 3가지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1)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한다.

2) 역경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3)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단정하면서 포기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혼인 잔치의 비유를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초대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합니다.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대면서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혼인 잔치는 기쁨의 자리이고 행복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상황만 앞세우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앞서 자신의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주님께서는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더 큰 선물을 주시려고 하는데, 스스로 단정 지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질책하면서 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웃으면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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