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갑곶 성지 전담 신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지에 있으면서 미사와 고해성사에 충실해야 하며, 성지 개발을 위해서 모든 힘을 쏟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본래의 일이지만 이것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또 다른 일들도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강의도 하고, 평화방송 일도 합니다. 사람들의 청을 받아 성지에서 아니면 외부에 나가 특강을 합니다. 여기에 써야 하는 글도 산더미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쓰담쓰담’이라는 후원회원들에게 보내드리는 묵상집도 매달 발행하고 있기에 쉬지 않고 글도 써야 합니다. 또한, 종교 잡지 칼럼도 매달 써서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 날, 묵상하다가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누구는 자신의 취미활동도 즐기면서 편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성과보수를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동료 신부들로부터 때로는 ‘나댄다.’라는 소리까지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면 커다란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마음속에서 이런 울림이 들리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복종해야 하는 종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종에게 ‘식탁에 앉아라’ 하지 않고 일을 시키며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회사의 책임자인데 여러분 밑의 직원이 출근해서 일한다고 사장이 직원에게 눈물 흘리면서 감사를 표시하겠습니까? 사장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딱 한 가지 일만 시키지 않으십니다. 딱 한 가지의 일만 해놓고 자기 할 일 다 했다면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복종해야 하는 종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앞자리에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뽐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라고 하시지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입으로 인간의 영광을 떠드는 자들은 이런저런 덕행을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아무런 은총을 입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온갖 덕을 다 실천하더라도 그것을 자랑하는 순간,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며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복종해야 할 종입니다. 많은 일이 내게만 많이 주어진다고 불평불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으로부터 더 많은 쓰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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