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이유
우리는 한해를 대림시기로 시작하여,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한해를 마감합니다. 그리스도가 내 마음 안까지 도착(대림 Adventus, 도착이라는 뜻)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나자렛 예수님을 진정 우리 삶의 주인이요, 그리스도(사도 4,12)요, 왕이라고 고백하면서 한 해를 마감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돈은 단지 돈이 아니라 神이 되었습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처럼 돈을 믿고 사는 듯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진정 내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나자렛 예수님’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또한,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참된 방법은 바로 ‘십자가’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한낱 조롱과 놀림감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이 명패도 사형 이유를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분의 행동을 극단적으로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왕은 유다인에게는 조롱거리였고, 이방인들에게는 지독한 어리석음이었습니다(1코린 1,23). 그럼 우리에게 십자가의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예수님, 죄 없으신 분이 죄인에게 먼저 다가가십니다. 죄인들과 함께합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 곧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죄인이 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구원방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별명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 ‘먹보요 술꾼’입니다. 술꾼(신명 21,20)이라는 말은 개선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정도로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욕을 먹으면서도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우도가 있습니다. 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있는 그곳에 왜 죄 없는 분이 죄인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걸까?” 그 모습을 통해 우도는 예수님의 구원방법이 죄인들과 함께 하는 것임을,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시기에 대신 희생하시는 것임을 깨달았고, 나아가 예수님 안에서 구세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희망을 예수님께 두었고, 예수님께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해 주십니다. 그 강도가 하늘나라를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하늘나라를 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죄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예수님, 죄인까지도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 다른 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시는 예수님, 이 모습이 참된 구세주의 모습임을, 이 방식이 세상을 구원하는 참된 왕의 방식임을 십자가를 통해 보게 된 오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 시대. ‘내가 곧 예수님이다.’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살아내려고 하셨던 그 방식 그대로 우리도 살아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서로 구분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한 형제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글 지철현 대건 안드레아 신부(미리내 성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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