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을 사용하는 저를 보고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요즘에 불편함이 많이 있는 만년필을 쓰는 사람을 찾기가 힘든 것도 있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 현재까지 컴퓨터를 가까이하는 저를 잘 아시는 분은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노트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제 이미지와 달리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지 않습니다. 노트에 글을 쓰는데, 그것도 불편함이 많은 만년필로 씁니다.
사실 컴퓨터에 직접 글을 쓰면 시간 절약을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저의 타이핑 속도는 학창시절에 1분에 800타 이상을 쳤었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컴퓨터에 직접 글을 입력하는 것이 훨씬 더 빠릅니다. 그러나 그 시간 절약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종이에 글을 적을 때는 속도가 빠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천천히 생각하고 또 깊이 생각하면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면 빨리 생각하다 보니 대충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책에서 “하느님은 잔꾀를 쓰는 사람보다 바보같이 미련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힘들고 어려운 길도 피하지 않는 모습에서 더 많은 은총과 사랑을 주신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빨리빨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천히 더 깊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이와 만년필을 선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기쁨에 넘치고 감격에 겨워 하느님 아버지께 바친 찬미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복음서를 통틀어 여기에서만 발견됩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즉, 철부지 같은 제자들이 많은 사람을 도운 일과 이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깨닫게 되었음에 큰 기쁨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 하지 못한 일들이 철부지와 같이 부족한 제자들 안에서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삶 안에서도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주님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쫓는 우리입니다. 세상은 많은 부와 명예를 간직하면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혜는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전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주님 안에 푹 머물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과 겸손함을 간직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이 이러한 사람 곁에서 함께 할 것입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