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역사 안에 함께 하길 원하시는 하느님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유다의 왕 아하즈는 어려운 상황, 위기의 상황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아시리아에 의지합니다. 이에 예언자 이사야는 아하즈왕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경고하며, 하느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표징으로 ‘임마누엘’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복음을 통해 봅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같이 살기 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잉태합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의로움의 소유자(마태 5,20)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하고, 마리아의 존재가 소중하기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물론 요셉에게도 이 상황은 위태롭고 혼란스러우며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는 때이며, 하느님의 은총이 가까이 와 있는 때입니다. 우리의 약함이 드러나면 바로 그 약함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를 통해 당신이 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약함이 드러나는 순간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입니다.
하느님의 개입은 다름 아닌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난 사건을 말합니다. 천사는 먼저 요셉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두려워하지 마라.”라며, 이어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말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이 아기를 통해 당신 백성을 구원하실 특별한 역할을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어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마리아의 임신이 하느님의 구원계획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예수님의 이야기이지만,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느님이 내 안에 개입하시려고, 함께하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이때 요셉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복음 마지막에 요셉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는 하느님 개입에 대한 요셉의 응답입니다. 이로써 인간 구원이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원래 파혼하기로 마음을 굳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하느님의 개입을,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은 원래 파혼하려고 했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려고 합니다. 고통의 순간, 혼란의 순간, 평화가 깨진 순간, 그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개입이 이루어지는 순간임을 기억합시다. 그 순간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임마누엘) 생각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시다. 그럼 분명 그분이 내 안에 새롭게 탄생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웃을 죽이는 삶이 아닌 구원 하고 살리는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글 지철현 대건 안드레아 신부(미리내 성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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