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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02 조회수 : 279

어느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보았습니다.

“50세가 되었을 때 당신의 저금통장이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성적표입니다.”

이 글귀를 보면서 ‘그러면 내 성적표는 낙제인가?’ 싶었습니다.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이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 요즘 집 한 채에 몇억씩 한다고 하는데, 저는 월세도 살기 힘든 금액만 통장에 들어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제 삶을 실패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사회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데 2~30대에는 주로 어떻게 돈을 버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그러나 50대에 접어들면서는 그런 대화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어떻게 잘 살 것인가?’라는 삶의 질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세속적인 부의 축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자기 옆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가 아닐까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그 밖에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의 주인공인 세례자 요한에 대해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에게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찾아오지요. 예수님께도 유다인들은 사람을 보냈지만, 예루살렘의 지체 높은 사람인 사제와 레위인이 아니라 종들과 헤로데 당원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지체 높은 사람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요한에게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들은 정답을 정해놓고서 요한을 찾아온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아니라 요한을 그리스도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었지요. 그러나 요한은 대사제의 아들로 좋은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일에 자주 했지만, 요한은 광야에서 혹독한 수련을 거치면서 세상을 향해서 힘차게 외쳤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맞소. 내가 그리스도요.”라고 말했다면 모두가 요한을 그리스도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모든 유다인들이 간절히 기다려온 그리스도로 인정받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세속적인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에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요한이 보여준 세속적인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그의 성실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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