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장 어려운 글쓰기였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막막한 작업이었다.’
어느 작가가 자기 책의 서론에 쓴 글입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개방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솔직함이 드러나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작가 자신도 평생 가장 어려울 수밖에 없고, 또 막막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 남들이 알지 못했으면 하는 부분을 숨기고 대신 ‘거짓된 나’를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그런데 거짓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니 더 큰 불편함을 간직하게 됩니다.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판단을 다른 사람을 향해 쏟아내고 있습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완벽하지도 않고 실수도 계속해서 반복하며 사는 부족한 ‘나’입니다. 그렇게 잘나지도, 어쩌면 가장 못났으면서도 자기 잘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닐까요? 따라서 자기를 드러내는 삶이 아닌, 스스로 낮추며 살아가면서 주님을 드러내는 삶이 더욱더 멋지게 보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묵상합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라고 불릴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섬기고 따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 하느님께 잘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철저하게 주님의 길을 닦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필요함을 예수님 자신도 보여주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제단에서 봉헌되는 진심들은 다섯 종류입니다. 즉, 황소, 양, 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입니다. 그리고 양에는 숫양, 암양, 어린양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어린양으로 표현하지요. 이 어린양은 특별히 일일 번제물로 최상의 제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최상의 제물로 스스로 봉헌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봉헌은 당신을 낮추시는 위대한 겸손이고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에게 직접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분명 사람에게 세례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으신 분이었지만, 겸손과 사랑의 모범을 이렇게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과 세례자 요한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 역시 겸손한 마음과 함께 하는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거짓된 나’가 아니라, ‘진짜 나’로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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