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신학교에서 ‘설교학’이라는 과목을 맡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설교학’은 말 그대로 강론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지요. 스스로 강론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해서 강의를 해왔습니다. 이 설교학을 강의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신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였습니다.
“우리 본당 보좌 신부님은 젊은데도 너무 강론을 잘하세요.”
물론 이 보좌신부는 신학생 때 제게 수업을 들었던 신부입니다. 저에 대한 칭찬이 아닌데도 기분이 좋은 것은, 본인의 노력으로 신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겠지만 가르쳤던 저 역시 한 몫은 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잘사는 모습에 너무나 기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세상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로 당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 뜻과는 정반대로 살고 있다면 어떠하실까요? 주님의 사랑보다는 세상의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욕심과 이기심만 내세우고 있다면 아마 크게 슬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무엇을 찾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갔을까요? 예수님에게서 학식을 배우려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출세 좀 하려고? 그 모든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찾는지 제자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동문서답 같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주님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승이 되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더 중요한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늘 예수님 곁에 있겠다는 염원의 표현으로 묵는 장소를 물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같이 하겠다는 의지 표명이었습니다. 이런 강한 의지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직접 와서 직접 보고 믿으면서 함께 하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에게서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주님 자체를 찾고 있다면 기쁘게 여러분을 초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에만 매여 있다면 주님께서는 크게 슬퍼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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