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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15 조회수 : 303

바람직한 엄마의 상은 무엇일까요? 작년 말에 갑곶성지에 새 생명이 보였습니다. 글쎄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성지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길고양이가 성지의 창고에 새끼 두 마리를 낳았나 봅니다.

처음에는 이 두 마리를 엄마 고양이가 애지중지 키우더군요. 그런데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이제 엄마 고양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 고양이 없이 돌아다니는 새끼 고양이를 보면서 ‘엄마가 왜 이래?’라는 마음이 듭니다.

인간에게는 ‘엄마 이상향’이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 안에서 자식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 이상향에 벗어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배신감을 느끼면서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꼭 똑같은 엄마의 모습만 있을까요? ‘다른 엄마’의 모습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엄마 이상향은 하느님 이상향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이렇게 해 주셔야 한다.’라는 이상향을 만들어서 온갖 불평불만을 하느님께 보내고 있지요. 그러나 정말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것을 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그분과 가까워지게 되고, 이로써 그분의 뜻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셨다는 장면을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주님께서는 기도 없이도 거뜬히 모든 것을 이루어 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새벽 아직 캄캄한 시간에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도 기도하신다면 하물며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멈추지 않는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당신께서 하실 일을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떠나십니다.

시몬의 장모를 비롯해서 질병을 앓는 사람,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실 수 있었던 것은 이분이 참 주님이심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말하는 ‘기도’를 참 주님이신 분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주님과의 대화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명령하듯이, “이거 해줘!”라고 말씀하시는 분 없습니다. 곧바로 부탁하기 전에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이것 좀 해 주실래요?”라고 부탁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내게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요한 기도를 정성을 다해서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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