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젓가락질을 못 한다고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먹을 쥐듯 젓가락질을 한다고 혼났습니다. 젓가락질이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고쳐야지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혼자 열심히 연습해서 고쳤습니다. 물론 고친 젓가락질도 틀렸다면서 또 혼나고, 이렇게 몇 차례의 교정 끝에 겨우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사람에게도 젓가락질을 못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또 아주 능수능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 어른들 앞에서 젓가락질하는 것은 커다란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래서 어른 앞에서 식사하는 것은 늘 어려웠고, 일부러 그런 자리를 피하기도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왜 젓가락질을 그렇게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젓가락질을 가장 편하게 할 방법이긴 하지만, 다르게 한다고 해서 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될까요?
젓가락 예절이 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조선 시대의 민속화에 나타난 젓가락질은 지금과 달리 X자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처럼 V자 모양으로 젓가락 예법이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일본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젓가락질을 하더라도 예절에 어긋날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 예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한다는 보편성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십니다. 고쳐 주실 때의 장면을 복음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 나병 환자에게 대시며 말씀하신 후, 그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왜 이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셨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율법의 정결례에 따르면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손을 대야지만 치료하실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씀만으로도 고쳐 주셨고, 어떤 경우에는 환자게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서 치유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신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방식으로 다가오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우리 역시 하나의 틀을 만들어서 가두어놓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획일화하는 옹졸한 마음이 아니라, 다양함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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