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성경 내용에 의문이 들어서 원문이라고 할 수 있는 희랍어 성경을 펼쳐 들었습니다. 30년 전에 1년 배운 희랍어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지요.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펼쳐 들고 찾으면서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희랍어 성경을 보면서 ‘신학생 때 열심히 공부할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사실 요즘에는 옛날 신학생 때 공부하던 책들을 다시 펼쳐보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면서, 이제는 공부가 아닌 사목에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목도 잘 알아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신학생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됩니다. 다시 신학생이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소학’을 가장 열심히 읽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움의 시작에 펼쳐보는 책이 ‘소학’이지요. 그렇다면 학문의 깊이가 남달랐던 정약용 선생은 이 책을 왜 다시 읽으셨을까요? 초심으로 되돌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갔기에 그 엄청난 저작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처음 만남으로, 내 일을 시작하며 가졌던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더 성장하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고, 더 큰 기쁨과 행복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려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사방에서 밀어 대는 군중 때문에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우리 신앙인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가기가 쉽습니까? 세상의 많은 방해물이 있습니다. 돈, 명예, 욕심과 이기심 등등 주님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방해물을 피할 길이 없다고 그냥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요?
사방에서 밀어 대는 군중 때문에 예수님 앞에 갈 수 없다고 포기했다면 이 중풍 병자는 치유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군중들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어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방해물을 피해서 주님께서 가르치고 계시는 집의 지붕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곧, 첫 마음을 기억하면서 성경을 더 열심히 읽고 기도와 묵상에 매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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