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연중 제2주일]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그리스도의 모습과 사명을 참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빛나는 신비에 우리를 참여시키고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화답송의 내용을 잘 묵상하여 나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무엇보다도 순명과 희생의 신비이다. 그분은 순한 ‘어린양’처럼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다.
복음: 요한 1,29-34: 하느님의 어린양!
이 ‘어린양’은 세례자 요한의 모든 증언의 핵심이다. 이 ‘어린양’의 의미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떤 사람들은 과월절 어린양(출애 12,1-28)과 연관시켜 해석하기도 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성전에서 행했던 어린양의 봉헌(출애 29,38-46)과 연결시켜 생각하기도 하고,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 번 열지 않고 참았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는 고통 받는 야훼의 ‘종’과 관련시켜 생각하기도 한다. 요한복음에서 어린양의 의미는 이 세 가지의 의미를 다 포함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오직 한 번 희생되심으로써 결정적 ‘파스카’를 성취하여 실현시키는 ‘고통 받는 종’이시기 때문이다.
이 ‘어린양’의 사명은 바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29절) 것이다. 여기서 ‘없애다’(희: áirein)는 말은 ‘자기의 어깨로 나르다, 짊어지다’; ‘제거하다, 없애다’의 의미가 있다. 아마 요한복음사가는 이 의미를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고 본 것이다. 즉 우리의 죄를 ‘당신 어깨 위에 짊어지시어’ 그 죄를 ‘없애주심으로써’ '거룩한‘ 때를 시작케 하시고 당신 제자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다(1요한 3,5-6 참조).
또 이 내용은 ’야훼의 종‘에 관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이사야는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다”(이사 53,12)고 하고 있다. 이것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으신‘ 그분과 같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거저 내어주시고 단신의 겸손과 순명과 무구함을 통해 ’종‘의 사명인 구원의 사명을 이루시는 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원을 역사의 매순간 모든 사람을 위해 실현시키고자 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당신 안에 ‘잠기게 하신다.’. 즉 성령의 세례를 베풀어주신다. 이 성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에 베풀어주시는 항구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선물들, 특히 ‘세상의 죄’를 태워버릴 성령의 선물이 우리에게 넘쳐흐르기 위해서는 ‘어린양’이 반드시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
그러기에 요한복음사가는 십자가 사건을 전해주고 있다. “이미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는 대신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이렇게 해서 ‘그의 뼈는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졌다”(요한 19,34.36). 이 것은 과월절의 어린양(탈출 12,46)을 상기시키고 있다. 즉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희생되시어 모든 사람을 항구한 당신 성령의 선물로써 죄의 종살이에서 끊임없이 해방시켜주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는 것이다.
제1독서: 이사 49,3.5-6: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제1독서는 ‘야훼의 종’의 노래의 둘째 노래의 일부를 전하고 있다. 여기서 ‘야훼의 종’은 야훼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구원의 사명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5-6절). 야훼의 종의 활동은 이스라엘의 재건 뿐 아니라 땅 극변의 모든 민족들에게 이르게 된다. 즉 구원은 커다란 빛과 같이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유일하고 참되신 하느님과 그분이 보내시는 그리스도를 알게 해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믿는 사람이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거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구원이 필요하다. 현대의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인류 생존 자체에 관한 문제들만 보아도 그렇다.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이성과 마음을 흐리게 하는 우리 안에 있는 ‘죄악’으로부터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분만이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모든 악의 뿌리 즉 ‘죄’를 ‘없애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죄’라는 말이 단수로 씌어졌다는 것을 주목하여야 한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되심으로써 이 세상으로부터 ‘없애러’ 오신 것은 어떤 구체적인 죄가 아니라, 바로 ‘죄성’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그분은 또한 우리 모두가 그분의 도움으로 영신적 물질적 구원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 추구해야할 길, 즉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길, 순진무구함, 겸손을 가르쳐주셨다. 세례자 요한의 ‘어린양’에 대한 증언은 바로 이러한 의미가 아니었겠는가?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닮아 우리 자신 또한 구원을 구체적으로 세상에 전해주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만국의 빛이 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 자신에게서도 드러날 수 있는 삶을 청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