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이동식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 밀폐된 공간에 한 곳은 딱 한 명만, 다른 곳은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시험이 시작되니 절대로 이동식 칸막이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잠시 뒤, 이동식 칸막이 건너편에서 한 여성이 심하게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동식 칸막이 안의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혼자 들어간 곳의 사람은 단 7%만 도움을 주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둘이 들어간 곳의 사람은 분명히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자그마치 70% 이상이 도움을 주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혼자서 하는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옆에 있을 때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용기를 갖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으로 인해 힘들다는 말을 합니다. 때로는 그 주변 사람이 짐처럼 큰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용기를 내어 사랑을 실천해서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힘들거나 커다란 짐을 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한 가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하느님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족을 이야기해주십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을 왔다는 말을 듣고도 주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라고 말씀하시지요. 어머니와 형제를 힘든 대상으로 또 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형제를 포함해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 모두가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혈육 관계로 맺어진 가족보다, 하느님의 뜻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땅에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구원을 위해 오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해서 그래서 미워하고 단죄하고 싶은 그 사람도 주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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