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젊은 사람이 등산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등산하는 젊은이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이때에는 젊은 청년이었기에 등산을 참으로 많이 했습니다. 방학 때에도 혼자서 등산을 하러 갔고, 친구들과 놀러 가도 주로 산에 갔습니다.
한 번은 친구들과 방학 때에 설악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오색약수로 올라가서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하지만 전날 산 밑의 민박집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산을 오르는데 다들 너무나 힘들어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합니다.
“어차피 내려갈 건데 그냥 내려가자. 너무 힘들다.”
이 말에 모두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옆으로 한 무리의 등산객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등산객은 모두 젊은 여성들로, 아마도 우리처럼 동아리 MT를 온 것 같았습니다. 여성으로 이루어진 등산객을 보고서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원래 계획대로 설악산을 온전히 등반할 수 있었습니다(참고로 이 여학생들과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힘내어 산을 오르는 여성 등산객들을 보면서 우리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때를 떠올려 보니, 우리 삶 안에서는 포기하려고 했던 적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냥 포기해버리면 어떤 변화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하려고 했을 때 뜻밖의 변화도 얻을 수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열심히 하는 누군가로 우리 모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을 보고서도 누군가가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심을 기념하는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율법의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라는 기록을 따라 예수님을 봉헌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굳이 봉헌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를 낳은 여인은 부정한 몸이 되었으므로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자기가 낳은 자식과 함께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정결례를 통해 깨끗해져야 한다고 율법은 말합니다. 그런데 남자의 씨를 받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성모님을 어떻게 부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그 아이는 하느님이 아닙니까?
율법 위에 계시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셨지만, 우리에게 겸손의 모범을 보이십니다. 이는 우리 역시 그 겸손의 모범을 세상에 실천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 명령을 기억하면서 겸손의 모범을 세상에 보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모습에 깨달음을 얻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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