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주님께서는 저를 정말로 사랑하시나요?”
“이렇게 죄 많은 저를 주님께서 사랑하실까요?”
우리의 사랑은 조건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알고 확신하는 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작년 말, 성지에 뜻밖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정전되었다가 잠시 뒤 다시 전기가 들어왔는데, 오류가 생겼는지 화재경보와 함께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것입니다. 순간 동안 엄청난 물의 양이 쏟아졌습니다.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정리하고 나니 오히려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미사가 없는 지하 성당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 이를 통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추운 12월이지만 그날은 너무나도 포근한 날이어서 물이 얼지 않았다는 것 등등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갖게 된 생각은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게르사인들의 지방’은 ‘게르게사’로, 오늘날 티베리아스라고 불리는 호수 가까이 자리 잡은 오래된 도시입니다. ‘게르게사’는 쫓아낸 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주님께 떠나 달라는 청을 했던 것이 이해됩니다.
바로 이 지방에 가셨다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만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챕니다. 그래서 엎드려 절하며 부탁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하십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5,8)
군대라는 이름의 더러운 영은 예수님의 허락으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비탈을 내리달아 호수에 빠져 죽고 말지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될 것을 몰랐을까요?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의 죽음을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소유인 사람을 마귀가 사로잡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돼지 떼의 죽음보다 한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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