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차를 타고 안전띠를 매지 않는 사람이 참 많았지만, 요즘에는 뒷좌석까지 안전띠를 맵니다. 안전띠를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편안합니다. 몸이 안전띠에 구속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순간의 편안함을 위해 안전띠를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안전띠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시속 48km의 속도에서 사고가 났을 때의 충격이 7층 높이에서 떨어질 때 받는 충격과 같다고 하지요. 그만큼 큰 위험에 있으므로, 스스로 보호하고 또 다른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안전띠는 반드시 매어야 합니다. 조금의 편안함을 위해 생명을 담보로 맡긴다는 것은 너무나 큰 손해가 분명합니다.
차에 탄 사람이 안전띠를 반드시 매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이라는 안전띠를 반드시 매어야 합니다. 때로는 주님이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만 같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인데도 주님을 생각하면 사랑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놀고 싶은데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라는 것은 큰 구속처럼 보입니다. 나의 노력을 얻은 재화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내놓아야 한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라는 미래를 떠올려 보면 당연히 주님이라는 안전띠를 매어야 할 것입니다. 즉, 주님과 함께해야 하고,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라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안전띠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한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라라.”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려졌습니다. 도저히 그 명령을 따르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명령을 철저히 따랐고, 부자 청년은 슬퍼하면서 주님을 떠납니다. 누가 더 행복한 사람입니까? 지금은 부자 청년이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지만, 결국 하느님 나라 안에서는 더욱더 큰 슬픔 속에 빠지게 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주님이라는 안전띠는 완전한 사람을 원하는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억지로 당신이라는 안전띠를 매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접 안전띠를 매기를 원하십니다. 즉, 우리의 굳건한 의지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세상의 것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주님과 함께하면서 주님의 뜻을 세상에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모범을 떠올리면서 주님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뜻을 잘 따르며 주님과 함께하고 있었는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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