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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3-19 조회수 : 310

두 눈이 모두 잘 보이던 사람이 어느 날 사고가 나서 한쪽 눈을 못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한쪽 눈을 못 보게 된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불행하다고 생각할까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떠할까요?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각막 기증자가 나타나서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행복하다고 생각할까요? 불행하다고 생각할까요?

똑같이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만, 누구는 불행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구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조건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행복을 만드는 ‘나’를 보지 못하고 남 탓, 환경 탓, 주님 탓을 외치면서 행복하지 못한 ‘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나’는 누가 통제를 할 수가 있을까요? 당연히 ‘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주님 탓, 남 탓, 환경 탓 등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다가는 화만 나고 절망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외적인 조건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만의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남편인 동시에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요셉 성인 대축일인 오늘, 요셉 성인에 대해 묵상을 해 봅니다. 성모님과 약혼한 뒤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에게 큰 혼란을 주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아직 같이 살기도 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또 꿈에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천사의 명령을 들었을 때,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사건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통해서도 겪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성경에 요셉을 의로운 사람으로 나오듯이, 율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상황에 고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셉 성인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어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합니다. 불행의 이유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행복의 상황으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곁에서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며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로 계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의 이유는 분명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의 이유만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행복을 만드는 ‘나’를 바라보는 데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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