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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3-22 조회수 : 305

우리가 하루 동안 하는 모든 행동은 과연 내 생각과 감정과 의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이를 연구 조사해보니 43%가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욕구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이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판단이 그렇게 많은 것이고, 단지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처럼 만들어 갈 뿐이었습니다. 

43%의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행동 양식을 기억하면서 보다 올바른 습관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성모님을 비롯해서 많은 성인 성녀들은 이 방법을 습관처럼 간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으로 한 번 더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습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자신의 영광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어떤 영광을 쫓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를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세상 안에서 겪는 고통과 시련을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대답해주십니다. 그리고 한 처음에 창조하실 때 그러셨던 것처럼 흙을 이용하여 그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치유가 이루어진 날이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의 고통이 없어진 것을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이루신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것만을 물고 늘어질 뿐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판단은 하느님의 일을 절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단정합니다. 치유 받은 남자는 바리사이들의 물음에 사려 깊게 대답하는 동시에 담대하게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치유 받은 남자를 죄인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습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바리사이의 모습이 바로 영적인 눈멂이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눈이 먼 것은 아니었을까요? 

먼저 하느님의 일을 봐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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