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마르타의 대화 속에 담겨 있는 희망
삶과 죽음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의탁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눈물까지 보이십니다.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셨지만, 부활의 희망을 생각하게 하는 마르타와의 대화에서 우리의 신앙이 나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라자로가 묻힌 무덤으로 가시다가 마르타를 만나십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인사하듯 말을 건냅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마르타는 오빠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주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을 표현합니다. 마르타의 인사에 예수님께서는 희망의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타는 예수님의 말씀에 더 큰 믿음으로 응답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의탁과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 신앙에는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다시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물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마르타의 대답을 묵상하면서 죽음이 두려움이 아닌 희망으로 다가온다고 느꼈습니다. 죽음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통해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었던 사람을 살리는 기적은 마르타의 믿음의 응답으로 시작되어 주님께서 완성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두려움과 불신이 커져 가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더욱 그렇게 만듭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불신의 “돌”을 치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말씀과 기도로 심리적 방역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믿어서 알 수 있고 알아야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신비 안에서 전적인 의탁의 마음으로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신 주님께 희망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제1대리구 복음화1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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