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에 폭 30cm의 간격으로 두 개의 선을 긋습니다. 이 폭 30cm 간격 사이로 똑바로 걸어갈 수 있을까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폭 30cm는 두 발을 모아도 남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땅바닥이 아니라, 3m 높이 위에 폭 30cm가 되는 나무다리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다리를 땅바닥처럼 편하게 걸을 수가 있을까요? 아마 불안한 자세를 취하며 걸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혹시 나무다리에 몸을 완전히 기대서 힘들게 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땅바닥의 선과 3m 높이의 다리는 폭이 30cm로 똑같은 크기입니다. 하지만 그 위에 올라섰을 때의 반응은 분명히 다릅니다. 어쩌면 3m 높이에 있는 나무다리의 폭이 더 좁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발을 헛디뎌서 3m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는 의심이 두려움을 만듭니다. 땅바닥에서는 절대로 이 폭에서 벗어나는 실수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혹시’라는 아직 일어나지 않는 가정을 하면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안에서 많은 두려움을 안고 있는 우리입니다. ‘혹시’라는 일어나지 않는 가정들이 할 수 있는 것도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를 복음이 전해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지요. 이 제자 역시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주님께서 함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셨지만,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뵙지 못합니다.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라고 표현된 것을 볼 때, 예수님과 가까운 관계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 죽음에 대한 실망, 절망, 그리고 의심까지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앞서 땅바닥에서와 3m 높이 위에서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마음가짐이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도 누구와 걸어가는지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알아뵈었던 순간은,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을 때라고 합니다. 바로 미사를 통해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가리켜서 어렵고 힘든 곳이라고 말합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과 시련의 공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실망, 절망, 의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님께서 주십니다. 두려움을 접고 대신 큰 희망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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