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27-33
요한 3,31-36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 프로젝트를 요약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공식이자
신조(信條)가 있습니다.
언젠가 나이 들어 머릿속이 흐려지고 기억력이 감퇴하더라도, 이 공식만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달달 외워둬야겠습니다.
그 공식의 저자는 요한 복음사가인데, 정말이지 군더더기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아무런 부연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①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② 그 극진한 사랑의 표시로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③ 예수님이 이 땅에 파견되어 오신 이유는 세상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④ 이 세상 그 누구든, 그 어떤 대역 죄인이든 상관없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외아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받고 멸망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너무 쉬워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표현에 제 마음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은혜로운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밥먹듯이 죄를 짓고, 동일한 잘못을 평생토록 반복하는 우리 죄인들에게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종말에 펼쳐질 무시무시한 광경이 자주 등장합니다.
읽을 때 마다 끔찍한 생각과 함께 밀물처럼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큰 일이네 이거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며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사실 종말에 펼쳐질 무시무시한 광경들에 대한 성경 저자들의 표현은 유다교 묵시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산책하다가 길잃고 헤매는 어린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고 칩시다.
이제 겨우 눈을 뜬 한달된 강아지입니다.
낑낑대며 어미를 찾아 사방을 헤매다닙니다.
그냥 두고 갈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사악한 우리 인간도 이런데 하물며 하느님은 어떻겠습니까?
연민과 측은지심의 하느님, 사랑과 자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연약한 죄인인 우리 인간, 방황하고 헤매는 우리 인간들을 절대로 모질게 몰아부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요한 복음 사가의 표현에 따르면 심판은 하느님께서 하시기 보다 우리 인간 각자가 자초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 인간 각자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 혹은 불신의 결과로 구원 또는 멸망을 자초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 각자의 자유 의지를 존중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해 신앙이냐? 불신이냐?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예수님의 요청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는가 여부에 따라 심판과 구원, 단죄와 영원한 생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어떻게서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그 간단한 공식, 신앙의 신조(信條)를 굳게 믿어야겠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메시아 하느님으로 굳게 믿고 고백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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