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들 중년의 나이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만난 후 얼마 안 지나 그 무게감이 사라집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당시에 사용했던 말투가 나옵니다.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욕도 섞어가면서 말이지요.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그때 시간 낭비를 참 많이 했어.”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당구장, 만화방, 오락실……. 공부해야 할 시간에 다른 것들을 참으로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그때는 시간 아까운 줄 모르는 나이잖아.”
당시의 어른들은 시간 낭비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다가는 나중에 후회한다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말을 많이 들으면서도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후회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먼 훗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되기 때문이며, 그 시간 역시 중요했던 시간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간이든 의미가 담겨 있다면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느냐?” 하면서 떠날 구실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도 이 정도였으니, 당시 예수님을 반대했던 종교지도자들의 적대적인 모습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힘들고, 함께 하는 것이 힘들었을까요? 예수님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시간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때로는 듣기 거북한 말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며, 또 함께하고 있는지를 묵상해 보십시오. 주님께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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