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5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0,22-30 :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성전 봉헌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전 봉헌을 기념하는 축제를 말하는데 마카베오가 안티오쿠스에 의해 황폐해졌는데 그 군대를 쳐 이겼고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이 승리를 기념하여 이 날을 기렸다. 이 축제가 시작되면 모든 사람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던 것이다. 이 축제는 온 백성이 참여하는 대규모 축제였다.
유다인들은 그분을 둘러싸고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요?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24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관해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말보다 행동으로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예수님을 자극하여 빌미를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이나 행적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물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26절)라고 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27절) 우리가 참으로 양떼라면 그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분의 양이라면 그분의 말씀을 기꺼이 듣고 따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알아듣는다.’는 말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른다는 뜻이다. 하느님을 듣는 사람은 그분께서 아시는 이들이다. 이렇게 아시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가족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에 힘입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르며, 말씀의 인도를 받아 은총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라 불린다.(마태 5,9 참조)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그들도 그분을 따라간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28절)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생명을 주심으로써 당신이 생명이심을 보여 주신다. 바로 당신 자신이 가지고 계신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요한 6,54)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그분의 몸에 참여할 때, 그분은 당신 자신의 생명을 우리 안에 심어 주시도록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10,9)라고 하셨으며, 이 좋은 풀밭은 ‘영원한 생명’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29절) 아버지께서는 양들을 아드님께 주셨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또한 아드님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신 분임을 말씀하시고 계시다. 아버지께로부터 나신 분으로 낳으심과 동시에 아들은 당신과 동등한 분으로 나신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위대하신’ 것이다. 이것이 아무도 양들을 그분의 손에서,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는 이유이다. 여기서 ‘손’은 권능을 의미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권능은 하나이다. 같은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30절)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은 바로 가장 영예로운 차원, 즉 하느님으로서 하나라는 말씀이다. 이 하나라는 표현은 숫자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둘이 하나인 상태이다. ‘나와 아버지는’ 두 위격이기 때문에 ‘~이다’라는 동사는 우리라는 복수 일인칭을 사용하셨다. 여기서 하나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의견과 사랑과 호의에서 일치하듯이, 의견의 일치, 판단의 동일성, 사랑 깊은 관계 자체를 나타낸다. 그분은 아버지에게서 나셨기에, 그분은 아들이시다.
우리도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사랑이라는 관계는 우리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한다. 그러한 모습이 삼위일체의 모습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전혀 다른 분이시지만 사랑이라는 관계, 완전한 사랑 안에 하나이신 하느님이시다.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지만 사랑의 관계로 하나가 되는 것이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럿이지만 한 몸 그리스도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참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삶을 노력하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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