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으로 강의를 하러 갈 때 체험했던 일입니다. KTX 고속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노트북을 켜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작업을 하면서도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를 합니다. 여기까지는 ‘열심히 사시는 분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어떤 분과의 통화에서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야?’ 하면서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조용히 좀 합시다.”라면서 항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항의에 더 화가 났나 봅니다. 결국, 이 두 분의 심한 말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지요.
전화 통화로 화가 났던 형제님께서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항의하는 형제님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차 안에 타고 있었던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스트레스도 상당했습니다. 본인은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화를 냈겠지만, 다른 사람 역시 똑같이 화가 났습니다.
감정은 이렇게 전달이 됩니다. 따라서 지금 어떤 감정이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있느냐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의 자애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즉,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실제로 지키는 것이 됩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면 그만큼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 되기 때문에 행복의 길에 더욱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고 원수는 따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요. 우리는 단지 종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친구이자 자녀가 되도록 불렸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따름으로써 우리가 몸담은 이 세상 자체가 하느님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하라는 명령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에만 머물면서 사랑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갑니다. 이는 자신만 정반대의 길로 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나쁜 감정을 전달시켜서 다른 이도 같이 정반대의 길로 가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친구가 된 것은 그분의 은총 덕분입니다. 이 은총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당연히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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