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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6일 _ 조명연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5-16 조회수 : 299

인터넷에서 ‘빠다킹 신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중에는 부정적인 말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않으면 그만일 것 같은데, 부정적인 말로 싸움을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요. 

처음에는 저도 화가 나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상처로 너덜너덜해질 뿐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는 누가 비판하든 시비를 걸든 상관없도록 아예 보지 않습니다. 물론 제 글에 대한 칭찬도 볼 수 없다는 단점도 있지만, 부정적인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정도의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있지 않기에 아예 보지 않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상실의 시대’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댓글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인상 깊은 대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문 문화면에 내 소설이나 인격을 까는 글이 실리면 기분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사회면에 성폭행범이나 뭐 그런 범죄자로 실리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자신을 다듬어야 할까 싶었습니다. 남으로부터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방향을 바라보는 힘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방법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적합합니다. 

지금이야 피의 순교가 없습니다. 누가 성당에 나간다고 목 자르겠다고 덤비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유혹에 넘어가, 주님의 뜻을 어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라는 자기 위안을 하면서 말이지요.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는 삶이 현대의 배교자 모습은 아닐까요? 

하느님과 하느님의 원수들 마음에 다 드는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이 둘 중에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면서, 세상 안에서 수난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받는 이들이 하늘나라를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세상을 따르는 것이 지혜로워 보이지만, 이 지혜가 별것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이 아닌 하느님을 따르는 것, 세상의 욕심과 이기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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