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발표력이 정말로 좋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이 친구가 늘 제일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늘 정답이 아닌 오답만 말한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산수 시간에 “누가 앞에 나와서 이 문제를 풀어볼래?”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이 친구가 여지없이 손을 들고 앞에 나와 문제를 풀었습니다. 물론 맞추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는 “너는 한 번만 더 생각하고 답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이야기하셨고, 우리도 “너는 그만 가만히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이 친구에 대한 기억은 틀려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함을 가지고 있지만, 공부는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 친구가 명문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틀리고 실패했을 때가 뇌가 성장하는 최고의 순간이라고 뇌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문제가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야 뇌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제 친구 역시 틀리면서 뇌가 성장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은 어떻습니까? 틀리는 것을 주저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즉, 이를 실패로 여기고 이 실패를 두려워하지요. 그러나 틀리고 실패하는 체험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언하시면서 제자들을 환난에 대비시키십니다. 그 힘이 바로 보호자이며 진리의 영인 성령에게서 나온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며 박해를 비롯한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박해하는 자는 자기들이 잘못하는지를 모릅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봉사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당시의 종교자들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착각을 인내로 극복하는 사람에게만 하느님의 궁극적인 보상이 주어진다고 하시지요. 실제로 제자들은 하늘 나라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를 받는 것이 실패가 아니며, 반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게 될 때 더 큰 선물을, 진정으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길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틀리고 실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맞는 것이고 진정한 성공이었습니다. 이를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세상의 실패보다 주님 안에서의 성공을 꿈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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