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법에 관한 것이었는데, 강사의 말은 느리기만 했고, 강의 내용도 너무나 지루했습니다. 어떤 예도 없이 법에 대한 원론적인 것만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강사의 말이 잘 들렸을까요? 이 강의실에서는 강사만 말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 안은 너무나도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강사의 말이 제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친한 신부와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맛있는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라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한참을 줄 서서 안에 겨우 들어갔는데, 식당 안은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해서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불가능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신부와 아무 말 없이 밥만 먹고 나왔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참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시끄러워도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조용한 곳이라도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주님을 이해하지도 또 믿지도 않는다면 어떤 말을 들어도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일상 안에서 주님의 말과 그 뜻을 들을 수 있고 내 마음을 그분께로 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지요? 혹시 주변 탓을 하면서 주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두가이들이 주님께 대한 신뢰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물음은 육신에 관한 것인데, 부활한 뒤에도 혼인에 매여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곱 형제의 아내가 된 한 여인을 예로 들어, 그 여인이 형제들 가운데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답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부활을 선포하는 성경도 모르고 있으며, 죽은 이를 살리실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도 믿지 않고 있다며 혼을 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신성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으며, 우리 역시 부활한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 희망은 세상의 생각과 판단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날 때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사두가이들은 예수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주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어서 주님의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분의 뜻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다면, 주님으로부터 어떤 소리도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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