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위의 형과 저의 나이 차이는 네 살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놀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형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저는 늘 혼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저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지요. 하교 시간의 차이로 인해서 집에 오면 늘 혼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 근처에 다른 집이 없어서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많이 외로웠을까요?
아닙니다. 혼자서도 놀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넓은 마당을 혼자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지면서 놀았습니다. 집 안에서도 제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 많아서 혼자 있어도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습니다. “이게 뭐예요?” 하면서 묻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호기심이 많으면 외로울 수 없고 그래서 매 순간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호기심을 잃어버립니다. 호기심을 일으키는 질문을 더는 하지 않으면서 그러려니 합니다. 어쩌면 호기심은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이고, 기쁘게 지금을 사는 지혜가 아닐까요?
우리의 주님께 대한 호기심은 어떤가요? 이 호기심을 가지고 주님을 알아가면서 희망을 품고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 대한 호기심 없이 ‘그러려니’ 합니다. 또 ‘이럴 거야’ 하면서 자신의 틀에 주님을 가둬버리기도 합니다. 그 결과 주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희망과 기쁨도 찾지 못합니다. 어린이와 같은 이가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라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그 내용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안에서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슬기로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지혜는 단지 지혜처럼 보이는 것을 지녔을 뿐이라고 하시지요. 그에 반해 악에 물들지 않은 사도들을 철부지라고 표현하십니다. 나이가 어려 철부지일까요? 아닙니다. 죄와 사악함에서 철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악에 물들지 않는 순박한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려 주심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환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대한 호기심 없이 ‘그러려니’ 하지 않으며, ‘이럴 거야’ 하면서 자신의 틀 안에 주님을 가두지 않습니다. 철저히 주님께 의지하면서 주님을 알기 위해 계속된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지요. 이 마음을 본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말씀드린 악에 물들지 않는 순박한 모습, 호기심을 갖고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 자신의 틀에 주님을 가두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만이 주님 마음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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