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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6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26 조회수 : 346

6월26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2열왕기 25,1-12
마태오 8,1-4 
 
은혜로운 만남 
 
직장생활, 수도생활을 위해 일찌감치 고향을 떠났던 저는 늘 합숙소, 내무반, 기숙사, 수도원 등, 공동 생활시설에서 살아왔습니다.  
 
요즘은 훨씬 덜한데 과거 집단 생활시설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전염성 강한 병균, 특히 피부질환 병균 앞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숙사에 원인도, 증세도 잘 파악되지 않는 강력한 피부병이 침입했습니다.
아마도 새로 입소한 아이를 통해 들어온 듯 했습니다.  
 
당시 피부병이 지닌 특징은 신속한 전염성, 지독한 간지럼 증세이었습니다.
저도 예외 없이 전염되었는데,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습니다.
피부병은 즉시 온 몸으로 번졌습니다.
밤낮없이 긁어댔는데, 특히 간지럼증세는 밤이 되면 더 심해졌습니다.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긁다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다양한 피부질환을 겪어왔던 저이기에,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 환자들의 심정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나병은 오늘날의 나병(한센병)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잘 치료되지 않는 악성 피부병들을 통칭해서 나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야 워낙 의술이 발달되어 아무리 강한 악성 피부병이라 할지라도 신속하게 치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 당시 악성 피부병은 치명적이었습니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보니 효능도 제대로 검증도 안 된 다양한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다 더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당시 나병 환자들이 겪었던 고통 중에 병의 증세가 가져다주는 고통도 큰 것이었지만, 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율법규정에 따른 격리와 추방으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당시 나병진단은 ‘추방명령서’ 혹은 ‘사망진단서’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나병 진단과 동시에 환자들은 즉시 집을 떠나 성 밖으로 나가 살아야했습니다.
그들은 인적이 드믄 숲속에서, 어두컴컴한 토굴 속에서 짐승처럼 살아갔습니다.  
 
누군가로부터의 치료나 보살핌은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었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삶 전체가 우울한 회색빛이었던 한 나병환자가 오늘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 나병환자가 지닌 특징은 적극성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습니다만 유독 이 환자 한명만이 강한 적극성을 지녔습니다. 
 
동시에 그에게는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강렬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꼭 치유되어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보고 싶은 강한 원의가 있었습니다.
그 강한 원의는 당시 나병환자들이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선, 저지선마저 넘게 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율법의 규정 상 군중들 사이로 들어오는 것이 절대 금지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앞 뒤 정황이 살필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죽으면 죽지!’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희망을 안고, 체면도 다 던져버리고, 예수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습니다.  
 
엎드려 절하면서 외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오 복음 8장 2절)
그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던 예수님께서 이윽고 행동을 개시하십니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오 복음 8장 3절) 
 
하루하루 지옥과도 같은 삶을 마지못해 살아가던 나병환자였습니다.
치유, 회복, 귀향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일상이었는데, 비참하고 어두운 그의 삶에 한 줄기 강렬한 빛이 찾아온 것입니다. 
 
은혜로운 예수님과의 만남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우리도 기억해야겠습니다.  
 
나병환자의 적극성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꼭 치유되어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그에게 구원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꼭 자신을 치유시킬 능력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확신이 그를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오게 한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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